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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방탄소년단을 성공 신화로 만든 '분노의 힘' 방시혁 프로듀서 (4가지 히스토리)

보컬치료사 수 2021. 8. 17. 03:01

 오늘은 방탄소년단을 이끌어준 방시혁 프로듀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을  프로듀싱한  방시혁 작곡가는 자신을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며  지금의 모습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불만 많은 방시혁" 이라고 자신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저에게는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저를 불행하게 하는 현실과 싸우고 분노하며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분노는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고 저를 멈출수 없게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졸업생 축사 멘트 방시혁 프로듀서  

 작곡가의 길을 문을 열어준 박진영 JYP와 만나다.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94년 "유재하 가요제"에 출전해 동상을 수상하고 그 후에 작곡한 곡들 데모 테이프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박진영이라는 가수를 만나고 97년에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방시혁을 영입했습니다.  그 이후 JYP에서 작곡가로 GOD의 '하늘색 풍선' 비의 '나쁜 남자' 백지영 " 내 귀의 캔디" 등으로 알려지면서 작곡가에서 가수 음악 전체를 책임 하는 프로듀서 일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프로듀싱 능력의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미적인 감각과 제 2의 판타지로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퀄리티를 높였다. 

 일본 만화 및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방시혁 프로듀서는 서울대에서 미화과 졸업을 했는데 이 예술적인 감각을 예술로 발휘할 수 있었으며 업계에서는  차선을 택하는 ‘무사 안일’에 분노했고, 최고의 뭘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내며 촬영 현장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살피면서 예술적인 감각으로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퀄리티를 높였습니다.  

 

 저는 별다른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어떤 기업이 될 지, 방탄소년단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심지어는 제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지에 대해서도 그림 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별다른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저를 불행하게 하는 상황과 싸우고, 화를 내고, 분노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고 제가 멈출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께 위로와 행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 꿈이 아니라 제 불만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꿈 없이 살 겁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쓸 바에,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산업이 처한 수많은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매진할 것이며,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밴드, 혹은 K-Pop 밴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여겨지는 벽을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끊임 없이 반성하고 제 자신을 갈고 닦겠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졸업생들에게 전하다.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표현을 찾아냈는데 이게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많이 비호감이었죠? 그때 이후 그런 형태의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제는 그렇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모습이 제가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거 같아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장은 제 작업과 제가 만든 회사의 일에도 똑같이 발휘됐습니다. 이 산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이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저의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K-Pop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비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업계와 사회가 나서서 찬양하고 최고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런 대우를 하는지,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납니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다만,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 저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고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원대한 꿈이 있거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저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분노가 제 소명이 됐다고 느낍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과 폄하에 분노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그것은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한 음악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팬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이기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받으며 눈 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분노라고 하면 화를 내고 불만을 표출하는 화만 생각만 할 수 있지만  분노를 승화시켜서 원동력으로서의 자신을 발전시키는 분노가 있다. 이러한 분노는 발전으로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을 얻게 한다. 분노가 긍정적인 발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을 잊은 채 느끼는 분노는 퍼붓기 저주 나 방해나 위협을 주는 행위만 될 뿐이다. 목적 없는 분노는 아무런 성과 없이 자신의 감정만 소모하고 스트레스만 쌓이게 한다. 

 일상에거 화를 냈던 감정을 생각해 보면 순간적인 감정에 화를 낸 적이 있을 것이다.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 가족에게  받았던 서운함 등의 감정 들이나 누군가에게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질렀던 모습이 떠오른다. 화를 내더라도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화풀이나 감정적인 짜증이 아닌 목적성이 있는 분노를 통해서 우리를 변화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